글번호
43402
작성일
2017.08.23
수정일
2017.08.23
작성자
조선경
조회수
14

[국제신문/세상읽기]모든 게 인연으로 엮여 있다 - 박은경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국제신문/세상읽기]모든 게 인연으로 엮여 있다
- 박은경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박은경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혹서가 주춤하다. 그러나 연일 핫뉴스와 함께 세상은 여전히 뜨겁다. 그런 까닭에 쌀쌀한 가을바람이 치명적으로 그립기만 하다. 지난날의 뜻밖의 기억들과 함께 말이다. 얼마 전에 지인이 위로의 문자를 보내주었다. 피천득 선생의‘인연 중에서’의 글이었다.

 



  
‘모든 게 인연으로 엮여 있다/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인연인 줄 알지 못하고/보통사람은 인연인 줄 알아도 그것을 살리지 못하며/현명한 사람은 옷자락만 스쳐도 그것을 살릴 줄 안다/살아가는 동안 인연은 매일 생겨난다/그것을 느낄 수 있는 육감을 지녀야 한다/사람과의 인연도 있지만/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이 인연으로 엮여 있다’.

 



  
벌써 30여 년이나 흘렀다. 유학 시절 서일본과 동일본 지역에 편재하는 우리 문화재를 조사 연구하는 선생을 따라 필드워크 참여의 기회를 누렸다. 규슈 지역의 화산 폭발 직후 헬멧을 착용한 채 해당 지역 사찰의 경내외에 흩어진 문화재를 대상으로 한 긴급 조사는 긴박감 속에서 이뤄졌다. 일본 중부지역 니가타에서 제트호일 배를 타고 사도가시마라는 섬에 상륙해 실시한 우리 문화재 조사도 이색적인 답사기행이었다.

 



  
사도가시마 동편 구치가와라 하천 인근에 아담한 절이 있다. 이 절은 고려 범종과 조선시대 아미타 불화를 소유하고 있다. 이를 조사하기 위해 가는 도중에 2평 남짓한 규모의 작은 식당에서 먹은 소바는 눈물겹도록 감동적인 맛이었다. 그래서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았다. 이처럼 타국에 남아 전하는 우리 문화재 조사는 나의 강장제였다. 그것으로 일본 생활의 고달픔을 견뎌낼 수 있었다.

 



  
귀국 후 타국에 있는 우리 문화재 조사는 계속 이어졌다. 14년 전 어느 날이었다. 일본의 고도 교토의 외곽에 위치한 전통사찰에 조선 불화 1점이 있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27년 전 1565년에 제작된 부처님 그림이었다. 필자는 이 그림을 직접 조사하기 위해 주지 스님께 편지를 드리고 이어 유선으로 연락을 취하였다. 그러자 스님께서 그 그림을 나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였다. 가벼운 농담으로 듣기에는 스님의 말씀이 짧고 장엄하였다. 그만큼 무게 있는 울림이었다. 벅찬 마음을 정리할 겨를 없이 방문 일정을 서둘러 잡았다. 여느 때 해외 조사에 비해 심하게 들뜬 대사건이었다.

 



  
절은 도심을 벗어나 굽어진 산길을 한참이나 지난 외곽에 있었다. 내부에는 일본 중세 가마쿠라시대 목조불상들이 봉안된 역사 깊은 절이었다. 드디어 한쪽 방으로 안내를 받아 들어가 보니 긴 목제상자가 다다미방 위에 놓여 있었다. 상자에서 그림을 꺼내 벽에 걸었다. 붉은색으로 칠해진 삼베 바탕에는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제자들과 성중들을 향해 법화경을 설법하는 석가영산회 광경이 담긴 그림이었다. 화면 아래쪽에는 희미한 상태의 먹글씨였으나 1565년에 제작된 기록이 확인되었다. 이윽고 목탁의 울림과 같은 화통한 육성이 들렸다. 다다미방으로 들어선 주지 스님은 맑은 피부와 고운 모습을 지녀 매우 인상적이었다. 스님은 주저 없이 나에게 그림을 기증하겠노라 하였다. 그리곤 줄곧 이 불화를 한국으로 돌려보낼 생각과 함께 그 인연을 기다렸다고 하였다. 마침 그 인연 속에 내가 다가왔다고 하였다.

 



  
삶의 폭과 깊이가 그다지 넓지도 깊지도 않고 교육과 연구의 길을 겨우 연명해온 나에게 생에 있을까 말까 한 경험이었다. 감사의 마음을 거듭 전하면서 다시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물러 나왔다.
이후 나는 이 불화를 어디에 보관하는 것이 가장 최적의 장소일까 하는 고민에 빠졌다. 드디어 결심하였다. 모교 박물관으로 기증하는 것이 그 가치를 발휘할 것으로 판단했다. 다시 인수팀들과 사찰을 방문하여 불화 귀환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타국에서 우리의 것을 지척에 두고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쁜 일이었다. 그런데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은 환상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한 개인이 타국의 작품을 그 고국으로 돌려보내야겠다고 마음을 갖고 그 인연을 기다렸다. 그 인연이 내게로 이어졌다. 그리곤 우리의 문화재가 귀환 길에 올랐다. 지난달 문정왕후어보와 현종어보가 고국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희망을 품고 잘 풀어야 한다. 존재하는 한 기억하는 한 언젠가는 돌아온다는 것을 다시금 새겨본다. 사람과의 인연, 사물과의 인연, 모든 게 인연으로 엮여 있다는 것을.

 

 

[2017.8.21.(월) 국제신문 본지 30면 / 기사 전문 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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