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번호
43401
작성일
2017.08.23
수정일
2017.08.23
작성자
조선경
조회수
22

[부산일보/아침향기]이름의 의미 - 강은교 한국어문학과 명예교수

 

[부산일보/아침향기]이름의 의미
- 강은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강은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엊그제 컴퓨터를 고칠 일이 생겨 컴퓨터 기사를 불렀다. 영수증을 쓰는 자리에서 그 기사는 이름을 물었다. 나는 평소에 말하곤 하는 대로 "'강' 자, '은' 자, '교' 자요, 학교할 때 '교오'요, '강은교'요~" 하고 대답했다. "이름이 참 예쁘신데요? 그런데 어디서 들었더라, 이름이 참 낯익은데요?" 하고 그 기사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숫자나 닉네임으로 불리는 이 시대
  자신 숨겨 스스로 숨 막히지 말고
  각종 명함도 옷장 속에 넣어 버리고
  이름이 존재의 주인이 되게 하자


  "아아, 제 이름과 똑같은 이름이 제목으로 쓰인 베스트셀러 소설이 있죠? 그 베스트셀러 소설이 또 인기 영화가 되었고…. 아마도 그 소설을 읽으셨거나 영화에서 보셨겠네요…." "아 맞아요… 손님, 참 유명한 이름을 가지셨군요." 그 기사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시인이 주 인물로 등장하는 어떤 베스트 셀러의 제목이 내 이름과 똑같은 이름으로 출간된 바람에, 거기다 그 인기 소설이 동명의 제목으로 영화화된 바람에, 일어난 일들이다.

  하긴 그 소설의 제목 때문에 나는 그 소설이 출간되던 때부터 많은 '호기심 어린 질문'을 받곤 했다. 심지어 어떤 학생들은 강의가 끝난 다음 가지 않고 있다가 "선생님, ○○○ 작가와 잘 아세요?" 하고 묻기도 했던 생각도 난다. 첨엔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고 "아니, 얼굴도 잘 몰라" 하고 나는 대답했었다. 학생의 설명을 듣고서야 학생이 왜 그렇게 물었는가를 알기도 했다. 그 후에도 종종 "○○○ 작가가 선생님을 좋아했었나 보죠?"라는 질문도 받곤 했다.

  덕분에 나는 이름에 대해, 특히 '현대 사회 속에서의 이름의 의미'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오늘, 이름이란 과연 뭘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꽃', 일부)

  이름이 존재의 향기로운 의미가 되어 너와 내가 연결됨을 몇 마디로 보여 주는 아름다운 시이다. 그런데 우리의 존재가 스마트폰 번호의 끝자리이며 주민등록번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하루에도 몇 번씩 후다닥 깨닫게 하는, 요즘의 사회 속에서의 우리의 서글픈 모양이 이 시의 아름다운 구절들과 중첩되어 떠오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불러주'는 순간부터 존재가 되는 그런 이름. 우리의 존재가 이름과 주민번호와 스마트폰 번호 끝자리로 끝나지 않는 그런 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비로소 존재하는 나의 귀한 존재성…. 이 시대엔 무리인가?

  이름을 커다란 고딕체로 적은, 그리고 그 앞에 다섯 개도 넘는 직함이 주르륵 써 있는 명함을 본다. 어딘가 모임에 갔다 온 날이면 수두룩해지는 명함들, 거기엔 '의미 있는 존재의 향기'가 되고 싶은 '존재들의 몸부림'이 가득하다. 명함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런 비명, 또는 절규가 그 좁은 사각의 하얀 종이 또는 누우런 황금빛 종이에서, 마구 들려오는 것 같다. 이름 석 자 만으로는 존재가 증명되지 못하는 우리들. 너무나 작고 작은 사소하고 사소한 우리들. 그래서 일찍이 김수영은 이런 시를 쓴 것일까?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오십원 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옹졸하게 욕을 하고(중략)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정말 얼마큼 적으냐…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이제, 무슨 회장인가, 또는 ○○○ 회원과 같은 직함들이 가득 이름을 장식하고 있는 명함은 옷장 속에 깊숙이 넣어 버리자. 이 가을이 오는 길목, 익명의 자기를 아무렇게나 펼쳐 보이는 SNS의 닉네임에서도 벗어나자. 나의 이름이 나라는 존재의 주인이 되게 하자. 닉네임 따위 뒤에 자기의 존재를 숨겨 스스로를 스스로 숨막히게 하지는 말자.

  휘트먼의 시구 하나를 다시 읽는다. 소리쳐라, 젊은이들의 목소리여! 큰 소리로, 가락에 맞춰, 가장 친근한 이름으로 나를 불러라!('브루클린 도선장을 건너며 3')

 

[2017.8.14.(월) 부산일보 본지 31면 / 기사 전문 보기 클릭]

 

첨부파일
첨부파일이(가) 없습니다.